카테고리 없음2016. 6. 30. 22:51

2016년 06월 30일 03:10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날 1시 쯤에 잠이 들어서 전화를 못 받았다.

 

2016년 06월 30일 04:00

 

아내에게서 전화가 다시 왔다.

명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전화를 제대로 받지는 못했다.

정신이 화들짝 들어서 잠에서 깼다.

 

엄마에게 메시지가 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메시지 시간은 03:38. 아내가 병원에 왔다고 한다.

 

엄마에게 아내의 상태를 물어보는 메시지를 보냈다.

무통 주사를 맞았고, 자궁은 3cm 열렸다는 답장. 9시 ~ 10시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병원에서 이야기 했단다.

 

서울을 올라가야 하므로 항공권 구입을 한다.

최대한 빨리 올라가야 하는데, 가장 빠른 항공편은 07:00에 있다. 유일하게 대한항공만이 이 시간에 운항을 하는 모양.

항공권을 사려고 했더니 이코노미 좌석이 없다. 이미 만석.

주저없이 프레스티지 좌석을 결제했다. 어찌됐건 최대한 빨리 서울을 올라가야 한다. 첫 아이는 늦게 나온다고 하지만,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올라가자는 마음으로 프레스티지 좌석을 끊었다.

 

좌석 체크인까지 하고 나서, 휴가원을 상신한다. 휴가 사유에 '아내 출산 임박'이라는 글자를 적고, 바로 결재를 상신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후다다닥 뛰어나가기 바쁜 장면이 많은데, 시간이 시간인지라 답이 없다. 차가 없으니 당장 차를 끌고 나갈 수도 없고, 지금 이 시간에 차를 끌고 간다고 해도 3~4시간을 잡으면 항공기 타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조용히 누워서 기다린다.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을 놓치지 않길 바라면서, 아내가 혼자 고생하지 않길 바라면서 조용히 누워서 기다린다.

 

2016년 06월 30일 05:30

 

칼같이 잠에서 깼다. 평소라면 이불 안에서 버둥거렸겠지만, 칼같이 일어나 씻는다. 평소 출근길이라면 면도도 안했을 것인데, 깔끔하게 면도도 한다. 정장을 입지는 못해도, 최대한 깔끔하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06월 30일 05:50

 

옷을 입고,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어제와 다를 것이 없는 똑같은 날인데, 뭔가 기분이 다르다. 흥분이 되면서도 걱정이 되는,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 공항 가는 길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진다.

 

2016년 06월 30일 06:50

 

항공기에 탑승한다. 부산 - 김포 노선은 매주 타지만, 아침 일찍 탑승하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다. 평범한 날도 아니다. 기분은 여전히 묘하다. 약간의 흥분과 걱정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 잠 길게 못자서 피곤한 것도 겹쳐있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잠에 들었다. 프레스티지 클래스이다보니 잠도 잘 왔다. 항공기 푸시백도 보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

 

2016년 06월 30일 07:50

 

항공기가 김포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내렸다. 조급해 하면 안되는데, 발걸음이 빨라진다. 김포에서 집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타야하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여러모로 답답하다. 택시를 탈까 생각도 해봤지만, 출근 시간인지라 그다지 효과적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2016년 06월 30일 09:30

 

병원에 도착했다. 아내는 여전히 진통 중. 아주 많이 진행이 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어머니에게 아내의 상태를 묻고, 아내 옆에 자리를 지킨다. 밤새도록 고생하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셔서 쉬시라고 말씀드렸다.

 

2016년 06월 30일 10:00

 

아내는 여전히 진통 중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간간히 농담도 주고받고,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자궁 수축이 간간히 오는데, 그 세기가 점점 강해지는 모양이다.

 

2016년 06월 30일 11:00

 

여전히 진통 중인 아내. 진통이 꽤나 심해진 모양이다.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아이가 좀 더 내려와야 하는데, 아이가 아직 못내려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분만실 수간호사께서 본격적으로 아내에게 붙었다. 무통 주사는 더 줄 수 없고(무통을 맞으면 힘을 주질 못한단다), 자궁은 다 열린 상황. 여기서부터는 오롯이 산모가 혼자 해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산모가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하면 산모는 물론이고 아이까지도 고생을 하게 된다고.

 

2016년 06월 30일 12:00

 

진통과 힘주기가 이어졌다. 한참 진통이 오는 와중에 힘을 주어야 아기가 자궁에서 나올 수 있는데, 이게 상상을 초월하게 힘든 모양이다. 옆에서 보는 것도 힘이 든데, 당사자는 오죽 힘이 들었을까. 그래도 아내가 참 대단한 것이, 큰 신음이나 비명소리 한 번 없었다는 것. 나름 호흡을 잘 유지하면서 힘을 주려고 하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06월 30일 12:10

 

아내가 분만실로 들어갔다. 보호자는 밖에서 대기. 수술복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호명을 하면 분만실로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간호사께서, 핸드폰을 꼭 챙기라고 하셨다. 아기를 잠시 볼 수 있으니, 그 때 사진을 찍어두라는 것. 카메라를 챙겨왔는데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도 되는가 여쭤보니 그래도 상관은 없다고 하신다. 카메라를 한 쪽 어깨에 매고, 호명해주기만을 기다린다.

 

분만실에서는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아내의 신음소리도 나지 않는다. 영화에서 나오는 온갖 비명과 신음을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없다. 정말 말 그대로 적막. 분만실에 다른 산모나 가족이라도 있으면 이렇게까지 조용하지 않을텐데, 아내만이 분만실에 있다. 너무나도 조용한 주변. 호명을 기다리면서, 가만히 기다려야 했겠지만 너무나 초조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되었다.

 

아내의 분만은 진행이 꽤나 늦은 편이라고 한다. 진통 시간이 약 30시간 정도 되는데, 꽤나 난산이라고 한다. 간호사들 모두 입을 모아서 난산이라고 하니, 겁이 났다. 병원에 와 있는 가족은 나 뿐이므로, 나마저 정신을 놓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냉정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겁이 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몇 년전, TV에 방영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갑자기 머리를 스쳤다. 어떤 중년의 남성이 어쩔 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는 장면. 의료진은 환자의 몸 위에 올라가 CPR을 하고 있다. CPR을 하는 의료진에게 이내 중년의 남성이 외친다. '멈추세요, 멈추세요'라고. 그리고는 중년의 남성이 무너져 내리며 오열하는 장면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사망한 사람은 산모였고, 노산이라고 했다. 출산 중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상황이 나빠졌고, 급기야 CPR까지 했지만 결국 사망한 장면. 중년의 남성은 당연히 그 산모의 남편이고 말이다.

 

설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애써 나쁜 생각을 떨치려고 하는데, 그 장면이 잠시 머리에 스치니 더 초조해진다. 예전에는 출산이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는데, 과연 그 말이 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나쁜 상황까지는 않기를 바라며, 카메라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초조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2016년 06월 30일 12:30

 

누군가 아내 이름을 부른다. 산모 보호자 들어오라는 것. 아내는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누워있고, 옆에는 아이가 어렴풋이 보인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다. 어디 다큐멘터리에서나 보았던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 뭔가 모를 비릿한 냄새, 익숙하지 않은 장면. 간호사 분의 안내에 따라 아내의 옆으로 가서 선다. 의료용 가위를 하나 건네 주는데, 탯줄을 자르라고 한다. 아이와 산모를 연결하고 있는 회백색의 탯줄. 탯줄이 원래 저렇게 생긴건가? 의외의 색깔이네 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자르려면 한 번에 깔금히 잘라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손에 들고 있는 가위에 힘을 주었다. 탯줄은 다행히도 한 번에 깔끔하게 잘렸다.

 

아내 옆에 자리를 잡고 서자마자, 아기를 보여주신다. 2.92kg의 딸. 초음파로나 보았던 아이가 눈 앞에 말짱히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아내는 기진맥진하고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아이를 끌어안았다. 눈 앞에 있는 모습은 현실인데, 뭔가 매우 비현실적이다. 나 또한 이런 일을 겪는구나. 사진을 하나 찍으라는 간호사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는다. 아내에게도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나니 다시 나가야 할 시간이다.

 

분만실 밖으로 나온 뒤, 정신을 다시 차린다. 딸이 태어났다. 가족들에게 알린다. 전화를 걸어 어머니와 장인 어른께 연락을 드린다. 아내가 고생했다고, 축하한다고 말씀을 해주신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뒤, 아내가 회복실로 나왔다. 아내는 아직도 정신이 없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으니 정신이 있을 턱이 없다. 간호사 분들이 고생했다고, 정말 잘 했다고 이야기를 한다. 아내 같은 경우가 흔치 않다고 한다. 진통을 30시간 가까이 했는데, 제왕절개 해달라는 이야기 단 한 번 안하고 잘 버텼다고. 난산이 될 수 있었는데, 아내가 잘 버텼기에 아기가 생각 외로 잘 나왔다고 한다. 아내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딸은 그렇게 우리 부부에게 왔다.  

 

 

 

 

 

 

Posted by Ny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