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6. 9. 27. 07:20

별 생각없이 예전 블로그를 들어가봤다. 최초로 작성된 글이 2009년 12월 날짜로 되어 있더라. 당시에는 일기랍시고 쓴 것인데, 그 내용이 어찌나 조잡하고 유치한지 차마 끝까지 읽기가 부끄러웠다. 그래도 나름 재미는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이런 저런 생각 몇 가지가 들었기 때문이다.


1. 고민

예전 일기를 보니, 그 때도 여전히 걱정과 고민은 많았다. 앞날에 대한 걱정, 사람 관계에 대한 걱정, 망가져가는 (...) 몸에 대한 걱정 등등. 2009년의 고민이나 2016년의 고민이나 양은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고민을 그렇게 해봐야 직접적인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다 부딪혀가며 답을 얻었고, 나름 만족스러운 답을 얻어냈다. 지금도 어찌보면 필요없는 고민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고민을 하면서 답을 찾았기에 만족스러운 답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하튼, 고민은 여전히 많다. 나이가 먹으면서 겁이 많아져서 그런 것인지, 나 혼자만 걸린 문제가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원래 성격이 그래서 그런 것인지. '최선을 기대하되 최악에 대비해라' 라는 말을 좋아하는 나니까 말이다.


2. 내가 일기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일기를 좀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일기를 대체 무슨 계기로 쓰게 된 것이지? 라는 생각.

2009년이면 군 복무를 마친 해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뭔가 외로웠던 것인지, 고민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인지, 그냥 뭔가를 끄적이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부터 순전히 내가 원해서 자발적으로 일기를 썼다. (물론 많이 쓰진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원래 일기 쓰는 것을 정말 극도로 싫어하던 사람이다. 내가 일기쓰기를 극도로 싫어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일기 쓰기를 과제로 내주고는 했고, 이를 선생님이 검사를 했다. 해왔는가 아닌가를 떠나서 그 내용까지 모두 보면서 검사를 했었는데, 이게 어느 날인가 굉장한 트라우마로 작용을 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항공기 관련 서적을 좋아하던 나는, 그날도 뭔가 항공기 관련 책을 읽었다. 거의 그림책 수준이기는 했지만, 그 책에는 F/A-18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었고, 여기에는 스트레이크(Strake; 공기 흐름을 제어하기 위한 일종의 소형 곁날개. Vortex Generator 역할을 한다.)의 역할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이 곁들여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제(...) 전투기를 좋아하는 나는 F/A-18의 날개 앞에 길고 작게 튀어나온 녀석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누구한테 아는 척 할 수 있으니깐), F-16도 스트레이크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생긴게 비슷하니까(....)


 


[날개 Leading Edge 앞에 쑥 튀어나온 부분... 이게 Strake다.]



여튼, 그 날의 일기에는 이 내용이 굉장히 함축적으로 적혀있었다. 대강 기억해보자면,


'오늘 책을 봤는데, F/A-18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더라. F/A-18에는 스트레이크가 달려있는데, 뭐 이런저런 역할을 한다더라. F-16에도 비슷한게 달려있는거 같은데, 이거도 스트레이크라는 그 물건인 것 같다. 참 즐거웠다.' (...)


사실 생각해보면 함축적인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학생이 스트레이크의 영문 명칭이 뭔지 스펠링을 어떻게 알았을 것이며(그 때는 그냥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에도 기뻐했다.), 그 구체적인 원리가 무엇인지까지 어찌 파악하랴. 전공이 유체역학 이런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때는 심지어 공부도 못했다. (지금도 못하지만) 그냥 이런 책을 읽었고, 이걸 알게 되어서 기쁘다. 정말 그날 있었던 '인상적인 일'을 적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정말 무섭게 혼이 났다. 담임 선생님은 스트레이크가 뭐냐고 묻더니, 그 영문 스펠링이 뭔지를 물었다. 거기에 답을 할 수가 있을리가. 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서 있자, 정말 호되게 혼을 내더라. 무슨 일기를 이딴 식으로 쓰냐는 이야기였다. 뭐... 분량이 짧아서 그랬는지, 본인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는지는 솔직히 아직도 이해를 잘 못하겠다. 여하간, 꽤 호되게 혼이 나고 일기를 다시 써서 내라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 쏟아가면서 일기를 다시 썼던 기억이 난다.


아마, 이 이후로 일기라는 것을 쳐다보기도 싫어했던 것 같다. 일기라는게 어떤 형식이 정해져 있는 것인데, 나는 그 형식에 맞춰서 일기를 쓰지 못한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 이후 중, 고등학교에서 수필 수업을 하면서 일기라는 것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시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에는 귀찮기도 하고(...), 굳이 그런걸 내가 쓸 이유가 있겠냐는 생각에서 일기를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여하간, 이 생각이 나중에 이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읽게 되면서 좀 바뀌었던 것 같다. 정말 작은 일 하나하나 소상하게 느낀 점도 간략하게 적어가며 기재해도 좋은 일기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은 것 같다. 고민도 많고 생각이 많으니 이걸 좀 정리해보자 라는 생각에서 일기 쓰기를 시작한 것도 있고 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참 여러가지 생각으로 다시 확장이 된다. 가장 크게 드는 생각은, 나중에 우리 딸한테는 저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것. 지나고보면 별 일이 아닌데, 그 당시에는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와서 한동안 뭔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Posted by Ny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