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6. 12. 4. 06:26

최근들어 전쟁과 관련된 이런 저런 사진들을 많이 보게 된다. 좋아서 찾아보는 것은 아니고, 전쟁에 사용되는 각종 무기 체계에 대한 사진을 찾아야 할 일이 있어서 검색을 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이런 저런 사진을 많이 보게 되는데, 새삼스레 전쟁이 참으로 참혹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사지가 떨어져 나가고 사방팔방으로 피가 튀어 있는 사진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진이 오히려 더 비참하고 참혹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뒤의 상황을 상상하게 되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찌되었건 마음이 참으로 착잡하다.


그리고 오늘 본 사진... 얼마 전 본 사진과 비슷하게, 아기가 전쟁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마음이 심하게 아프다. 속도 쓰리고...


아래의 사진은 Bloody Saturday(血腥的星期六), Motherless Chinese Baby, Chinse Baby 또는 The Baby in the Shanghai Railroad Station 이라는 제목으로 불리는 것 같다. 아래 내용 및 사진의 출처는 모두 위키피디아 영문판에서 가져온 것이므로 정확한 정보는 다음 링크를 참조하는 것이 좋을 것 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Bloody_Saturday_(photograph)


이 사진은 1937년 8월 28일 토요일에 촬영되었으며, 1937년 8월이면 제 2차 상하이 사변이 있던 때인데 그 때의 사진 같다. 1937년 8월 28일 토요일 오후 2시 일본 해군은 상하이에 대한 폭격을 수행한다. 오후 3시 경에는 폭격이 종료되고 일본군의 항공기가 보이지 않았는데, 오후 4시 경에 16대의 일본 항공기가 나타나더니 상하이 남부 역에 폭격을 가했다. 당시 상하이 남부 역에는 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이 몰려 있었으며, 일본 항공기들은 여기에 폭격을 가한 것이다.


사진 기자였던 H.S. Wong은 급히 차를 몰고 역으로 향했는데,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It was a horrible sight. People were still trying to get up. Dead and injured lay strewn across the tracks and platform. Limbs lay all over the place. Only my work helped me forget what I was seeing. I stopped to reload my camera. I noticed that my shoes were soaked with blood. I walked across the railway tracks, and made many long scenes with the burning overhead bridge in the background. Then I saw a man pick up a baby from the tracks and carry him to the platform. He went back to get another badly injured child. The mother lay dead on the tracks. As I filmed this tragedy, I heard the sound of planes returning. Quickly, I shot my remaining few feet [of film] on the baby. I ran toward the child, intending to carry him to safety, but the father returned. The bombers passed overhead. No bombs were dropped."


"끔찍한 광경이었다. 일어나려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죽은 사람과 다친 사람이 열차 선로와 플랫폼 여기 저기에 널부러져 있었다. 잘려나간 사지가 사방 팔방 놓여 있었다. 내가 하는 일(사진 촬영)만이 내가 본 것을 잊게 해주었다. 카메라에 필름을 다시 넣기 위해 멈췄는데, 내 신발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았다. 열차 선로를 따라 걸으면서, 불타는 고가 도로를 배경으로 하여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 때, 어떤 남자가 열차 선로에서 아기를 플랫폼으로 옮기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은 심하게 다친 다른 아기에게 돌아왔는데, 아기 엄마는 열차 선로 위에 죽어 넘어져 있었다. 이 비극적인 장면을 사진에 담고 있을 때, 비행기가 다시 돌아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재빨리 남은 필름을 이용해 아기의 사진을 찍은 뒤, 아기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 때 아기 아빠가 다시 돌아왔고, 비행기들은 그냥 지나쳐 갔다. 폭격은 없었다. "


H.S. Wong은 이후로도 아기의 이름이나 성별을 알 수 없었고, 생사 여부 조차 알 수 없었다. 다음날 Wong은 카메라를 신문사에 보냈으며, 약 1,800명의 사람들(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 역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상하이 신문들은 300명 미만의 사람들이 생존했다고 보도 했으며, Life 지는 약 200명이 사망했다고 10월에 보도하였다.


위키피디아에는 아이의 아빠로 추정되는 남성이 아이에게 다가간 사진이 있으며, 아기가 들것 위에서 응급 치료를 받는 사진 또한 소개되어 있다.



China, Shanhai, South Railway Station, Aug, 28, 1937

H.S. Wong.

Posted by Nyari